본문 바로가기
상식 및 정보

'스카치'라는 이름의 유래

by frhp맨 2021. 10. 2.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어 가장 친숙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아예 물건과 관련된 사람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하다. 핀과 클립 같은 품목은 확실히 제작자를 기념할 수 있는 이름표나 메달을 달고 있지 않다. 클립이 담긴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발명가는커녕 사람 이름 같지도 않은 아코사, 노스팅사 등에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스테이플러에는 보스티치(Bostich)라고 쓰여 있는데, 사람 이름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수수한 일상용품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발명가에 대한 힌트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제품의 브랜드 및 회사 이름은 종종 제품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며, 그로써 물건의 진화 과정에 관한 심오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은 제품이 바로 실패로 끝나지만 않는다면,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새 제품으로 연결된다.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는 서한집부터 냉장고 문에 이르기까지 무엇에든 착 달라붙는 조그마한 노란 종이쪽지인 포스트잇 노트의 포장지에는 '스카치'라는 상표와 굵은 글자로 쓰인 '3M'을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한 호사가들은 '3M'이 한때 '미네소타광공업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로 불렸다는 사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저절로 알 것만 같은 정체가 분명해 보이는 회사가 조그마한 접착 노트패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미네소타주는 스코틀랜드 사람보다 스칸디나비아 사람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1902년 미네소타주 투 하버스 출신의 실업가 다섯 사람이, 그 지역에서 발견되어 거의 횡재로 여겨지던 가옥을 캐내기 위해 미네소타광공업회사를 세웠다. 강옥은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경도가 단단한 광물로서 회전 숫돌을 만드는 공장에서 꼭 필요했던 만큼 큰 값어치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채굴해본 결과,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질이 떨어졌다. 그래서 고심 끝에 1905년 덜루스에서 사포를 만드는 회사로 업종을 바꾸었다. 가까스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겨우 파산을 면하는 어려운 세월이 계속되었으나, 진짜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제품만큼 좋은 품질을 만들어내야 했다.

 

1916년 판매담당 부장이 시험실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불량품 때문에 판매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므로, 품질관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시험실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포 사용자들이 겪은 문제점에 대응해 새롭게 개선된 품목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연구와 개발을 했다. 판매원들은 회사에 시험실을 만든 이유가 품질관리를 잘한 후에 새로운 제품에 대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판매원들이 돌아와 들려주는 가슴 철렁할 정도로 두려운 제품의 실패는 물론 흔하게 들어와 짜증 날 정도로 자질구레한 결함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장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품이 지니는 잘못된 점을 없애고 개선하다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포의 품질은 주요 원자재인 왕모래와 종이의 품질뿐 아니라 그것을 균일하고 안전하게 결합하는 기술, 즉 연마제를 바탕종이에 붙이는 기술이 중요했다. 따라서 종이에 연마제를 코팅하는 전문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양질의 접착제를 사용했지만 초기의 사포는 물기에 젖으면 연마제가 떨어졌기 때문에 건조한 상태에서만 사용해야 했고, 결국 먼지 속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1920년대에는 특히, 자동차 몸체의 페인트 마감공정에 사포 작업은 필수였다. 그런데 그때 생기는 먼지가 직공들에게 납중독을 일으켰다. 방수가 가능한 사포를 만든다면 젖은 상태에서도 사포 작업이 가능할 것이고, 결국 먼지를 줄여 기존의 결함에 대한 개선의 효과가 나타날 터였다. 미네소타광공업회사는 방수 사포 개발에 착수했다. 시험실의 젊은 시험기사인 리처드 드루(Richard Drew)는 개발된 제품을 가지고 세인트폴 자동차 작업장을 찾아가 현장 시험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 그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25년에는 자동차에 두 가지 색을 페인팅하는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와 차체공장에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두 번째 페인트를 칠하면서 첫 페인트를 칠해 놓은 곳과 깨끗하고 분명한 경계선을 확보하기 위해, 종이나 푸줏간에서 사용하는 기름종이로 첫 페인트 부분을 잘 가려야만 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공장에서 배합한 아교를 사용하면 때로는 너무 꽉 붙어서 떼어낼 때 문질러 벗겨내야 했기 때문에 페인트까지 함께 벗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외과 의사들이 쓰는 접착테이프를 사용해보기도 했으나, 테이프의 바탕 면을 이루는 천이 새롭게 칠한 페인트에서 용제 성분을 빨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차체를 덮는 종이가 보호하려는 페인트에 오히려 달라붙기도 했다. 분명히 차체를 덮는 기존의 방법에는 하자가 있었다. 하루는 드루가 방수 사포 작업을 하던 중에. 차체공장 직공들이 두 가지 색조의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투덜거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 통신학교를 다니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던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접착제가 너무 쉽게 달라붙지 않는 테이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테이프를 쉽고 깨끗하게 풀어 쓸 수 있는 두루마리 모양으로 만들고, 새롭게 페인트를 칠한 자동차 몸체로부터도 쉽게 떼어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점을 알아내는 것과 접착제와 종이의 알맞은 조합을 찾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문제점을 알아내는 것이야 차체공장에서 불현듯이 생각났지만, 알맞은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접착제를 붙이는 바탕종이는 물론이고 기름, 합성수지, 그 외에 이것저것 실험하는 데만 2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포기할 마음이 들 정도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드루는 이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실험 도중에 남아 있었던 주름종이로 한번 실험해보았다. 그리고 그 주름진 표면이 바로 이상적인 바탕 면으로서 우수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회사의 수석 화학연구원이 드루가 발명한 신제품인 차단 테이프 샘플을 가지고 디트로이트 자동차 제조사를 방문한 결과, 차량 세 대분의 주문을 받아 왔다.

 

회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테이프에 스카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초기에 생산된 5센티미터 너비의 테이프에서 가장자리에만 접착제를 발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그 정도만 발라도 충분했고 차단하는 용도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테이프의 한쪽 가장자리로는 차단용 종이를 붙잡아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은 자동차 차체에 붙어 있지만, 가운데 부분은 아무 데도 붙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렇게 적은 접착제를 사용하다 보니 무거운 종이가 테이프를 끌어당겨 벗겨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짜증이 난 페인트공들이 판매원에게 "이 테이프를 인색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깍쟁이 스카치(스코틀랜드인을 가리킨다-옮긴이) 사장에게 가져가서 접착제를 더 발라 가지고 오시오"라고 불평했다. 회사의 원로 임원들은 이 이야기가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이 "이름을 짓는 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짐작건대 제조 회사가 접착제를 사용하는 데 인색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들이 수많은 가정용품을 수리하는 데 이 테이프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출처 :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