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다”의 주연 ‘바리스타’
요즘에는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식인 밥보다 자주 커피를 마시는 것이 한국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19세 이상 성인의 주당 커피 섭취 횟수는 12.3회로 김치(11.8회), 쌀밥(7.0회)을 제치고 단일 음식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커피 수입량과 커피시장 규모도 매년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보면 2014년 1~9월 생두·원두 등 커피 수입량은 9만9372t으로 1990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규모는 2011년 1조 4000억 원에서 3년 만에 1조 원가량 늘었다. 특히 정체중인 인스턴트커피와 달리 원두커피는 매년 두 자릿수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바리스타는 이처럼 필수 기호식품이 된 커피를 다루는 전문가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음료를 추출하고 손님에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게 바리스타 역할이다. 커피 문화가 날로 대중화되면서 그 중심에 선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바리스타는 누구인가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 안에서 뭔가를 만든다는 말뜻만 보면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도 마찬가지이나, 이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쓰인다. 바리스타는 바 안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는 추출되는 커피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사람을 뜻한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바리스타가 첫 번째로 하는 작업은 좋은 원두를 고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커피 산지의 특성과 로스팅(roasting·생두를 볶는 과정) 상태를 항상 숙지해야 한다. 원두의 특성에 맞는 추출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바리스타의 몫이다.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등 추출 방식에 따라 물의 양과 온도, 추출 시간 등을 조절해야 한다.
바리스타는 보통 완성된 커피를 직접 고객에게 전달한다.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서비스업 성격도 지닌 것이다. 바리스타는 손님의 취향에 맞춰 커피를 추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등 ‘관계’를 맺기도 한다. 좋은 재료로 최상의 맛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요리사와 비슷하지만 고객과 대면 서비스가 필수라는 점에서는 와인 소믈리에와도 같다.
최근에는 바리스타들이 전문성을 더 겸비하기 위해 로스터(roaster·생두를 볶는 사람)나 커퍼(cupper·커피의 맛과 품질을 평가하는 사람) 업무까지도 한다. 직접 로스팅을 하는 소규모 업체일수록 바리스타가 생두 구입부터 커피 서빙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커피의 맛을 내는 것부터 일관된 품질 관리까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커퍼(cupper)의 경우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 산하 커피 품질 인증소(CQI)가 시험을 거쳐 발급하는 ‘큐-그레이더’(Q-grader) 자격증을 따는 것이 일반적인 입문 방식이다. 큐-그레이더는 커피 품질의 등급을 정하는 사람으로 커피 감별사 혹은 커피 감정사로 불린다. 커피의 맛과 향, 질감, 산미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품질을 관리·감독하는 일을 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 1, 2명이던 큐-그레이더는 현재 수백 명으로 늘었다.
카페의 전체적인 관리 업무도 바리스타의 영역에 속한다. 설거지와 청소는 기본이다. 재고 조사와 원·부자재 관리는 물론 각종 사무를 챙겨야 한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라면 아르바이트 관리부터 판촉과 마케팅, 재무 관리,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개인 숍의 경우도 이런 업무 내용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끈기와 성실함 필요한 ‘기술직’
바리스타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커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다. ‘2014 한국바리스타챔피언십(KBC)’ 대회에서 결선 1위를 차지한 엔제리너스커피의 정아름 바리스타(27)는 “스스로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일을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며 “흥미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고,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레 깊이 공부하며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뛰어난 미각이나 후각의 소유자라면 출발이 순조로울 수 있다. 기본적으로 커피도 식재료를 다루는 요리의 일종이기 때문에 맛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추출 방법을 달리해가며 수많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맛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원두의 상태를 면밀히 판단하려면 재료에 대한 이해도 높아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 등 기계 특징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또 손님의 취향과 날씨 등에 맞춰 커피 맛을 조절하는 순발력과 집중력도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은 결국 기술의 연마를 통해서 충족시킬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듯 바리스타 역시 반복된 경험과 꾸준한 노력 말고는 달리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커피업계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바리스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끈기와 성실함을 꼽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큰 보람은 “맛있다”는 칭찬 한마디
바리스타의 일과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 숍과 프랜차이즈 매장 등 업무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8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씩 일한다. 주 5일 근무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카페는 한 달에 5~6번 쉬는 것이 고작이다. 업무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도 크다. 육체노동(커피 추출)과 감정노동(손님 응대)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도 상당하다.
김병기 ‘프릳츠 커피’(33) 대표는 “바리스타라고 하면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한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커피를 만드는 시간은 전체 업무 시간의 20% 정도에 불과하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 잡다한 카페 운영의 전반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리스타를 미소 짓게 하는 순간은 하나다. 커피를 마신 손님이 “맛있다”고 말해줄 때다. 김병기 대표는 “가게를 찾은 한 노부부에게 엘살바도르의 유명한 여성 농부가 재배한 커피를 맛보여 드린 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바리스타가 되려면
비교적 흔한 직업이 되었지만 바리스타는 자격이나 요건을 규정하는 공신력 있는 시험 같은 것이 따로 없다. 한국커피협회. 한국능력개발교육원. 한국음료산업연구원 등 각종 민간단체들이 주관하는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이 많지만 필수는 아니다. 전국대회를 거쳐 뽑힌 국가대표 바리스타 중에도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많다. 수십만 원씩 하는 자격증 취득 과정을 ‘장삿속’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배운 것과 실제 카페에서 이뤄지는 바리스타의 업무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바리스타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카페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개 바리스타 모집에는 특별한 자격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전문가로 커나가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힘들다. 소속된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훈련시키기도 하지만 직업적 성장은 개인 노력에 절대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매장 관리의 기초부터 카페 운영 전반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 업체마다 음료 레시피와 접객 노하우 등이 이미 완성돼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가능하다. 반면 직접 로스팅을 하는 개인 숍에선 커피 추출과 관련해 보다 심층적인 공부를 할 수 있다. 레시피에 따라 기계적으로 음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커피 맛을 내는 원리와 과정을 보다 자세히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실무를 익히기 전에 이론과 실기를 먼저 배우는 방법도 있다. 대학교 학과에서부터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은 물론 각종 아카데미와 사설학원 등에서도 바리스타 교육은 이뤄진다. 사설학원의 경우 일정 조건을 갖추면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할리스커피와 엔제리너스커피 등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도 일반인과 바리스타 지망생 등을 대상으로 한 커피교실을 다수 운영 중이다.
바리스타의 미래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커피 전문점은 대략 2만곳 정도로 추산된다. 주스와 디저트 등을 함께 파는 복합매장이나 레스토랑, 일반음식점까지 포함하면 커피 판매업소는 5만여 곳까지 늘어난다. 한 업체에 바리스타가 2명씩만 근무한다고 계산해도 전국에 10만여 명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창업경영연구소 이상헌 소장은 “국내 커피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여전히 창업자들의 선호 아이템 가운데 커피 전문점은 빠지지 않는다”며 “대기 수요가 계속 있기 때문에 직업적 측면에서 보면 바리스타는 유망한 직종의 하나”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도 지속적으로 바리스타를 채용하고 있다. 저마다 수백 개의 매장을 전국에 운영 중인 이들 업체는 평균 2000~3000명 정도의 바리스타를 필요로 한다. 특히 커피문화가 대중화되고 고객들의 기대수준도 높아지면서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커피 품질 관리를 위해 큐-그레이더 등 실력 있는 인재를 ‘모셔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바리스타가 초기엔 박봉과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전문성을 쌓기도 전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초보 바리스타의 경우 카페에 고용되면 보통 100만원 중반대 월급을 받는다. 한 커피업계 관계자는 “본인 가게를 내거나 유명 업체에 스카웃될 정도로 기술을 쌓으려면 최소한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바리스타의 경쟁력은 오로지 전문성과 기술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직업의 세계 - 글: 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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