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란 단어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깝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그리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문명은 인류의 역사는 물론이고 현재 우리의 삶과 시대까지를 정의 내린다. 따라서 우리는 문명이란 틀로 규정되며, 문명이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문명이 현재의 개념으로 자리잡힌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18세기 이후 문명이라는 말이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우리의 인식속에 들어온 것이다.
1. 문명의 개념
문명(civilization)이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통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의 총체로서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문명의 생명은 공유성에 있다. 인류 문명은 자생과 모방에 의해 탄생하고 발달하며 풍부해진다. 자생성은 문명의 내재적이고 구심적인 속성으로서 문명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규제하고, 모방성은 문명의 외연적이고 원심적인 속성으로서 문명의 전파성과 수용성을 낳는다. 따라서 자생성과 모방성은 문명의 두 가지 속성인 동시에 발생 및 발달의 2대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두 속성은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이중 어느 하나가 제외되거나 미흡하면 반드시 문명의 침체나 기형을 야기하게 된다.
문명의 모방은 그것이 창조적인 모방이건 답습적인 모방이건 간에 문명 간의 교류를 통한 전파와 수용 과정에서 현실화된다. 따라서 교류는 모방에 의한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는 필수불가결의 매체다. 그런데 이러한 교류는 일정한 지리적 공간인 통로를 거쳐서만이 가능하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 통로가 자연지리적 여건에 따라 시공간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문명의 교류를 실현 가능케 한 이 유한한 통로가 바로 실크로드다. 실크로도의 존재는 문명교류의 전제이자 그 필연적인 산물인 것이다.
2. 문명과 문화
문명을 얘기하면서 약간 혼돈되는 것이 바로 문화와의 관계 문제다.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며 그 양상이다. 문명과 문화의 관계는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총체와 개체, 복합성과 단일성, 내재와 외형, 제품과 재료의 포괄적 관계다. 예를 들면 문명이 총체로서의 피륙에 해당한다면 문화는 피륙을 구성하는 개체로서의 재료인 줄, 즉 씨줄과 날줄에 해당한다.
개체와 재료로서의 문화도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물질 문화를 씨줄이라고 하면 정신 문화는 날줄에 비유할 수 있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피륙이 되듯이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가 융합되어 문명이란 하나의 총화물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제 재료(문화)로서의 줄도 따지고 보면 또한 몇 가지 재료로 구성된 제품이다. 물론 이 제품은 문명으로서의 제품이 아니고 문화로서의 제품일 뿐이며, 그것을 구성한 재료는 세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농경 문화나 종교 문화 같은 것이 이 세분 문화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세분 문화는 또 미세분 문화로 분화된다.
동서교류는 본질적으로 문명 간의 교류다. 물론 이 문명 간의 교류에는 문명의 구성 요소이며 그 양상인 문화 간의 교류도 당연히 포함된다. 경우에 따라서 이러한 교류는 이질 문명 간이나 동질 문명 내의 세분 문화나 미세분 문화 간의 교류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질 문명 간인 동질 문명 내의 세분 문화나 미세분 문화 간의 교류 현상은 서로 다른 경제권이나 문화권, 지세권 간의 교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권에서는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 간의 교류이고, 문화권에서는 과학기술과 종교의 상호 교류이며, 지세권에서는 해양 문화와 대륙 문화 간의 교류라 할 수 있다.
3. 문명의 진화
문명의 진화란 장기간에 걸쳐 문명이 단계적으로 하나의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변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문명이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단계적으로 변화(변동)가 거듭된다고 보는 시각으로서 변화는 단기적인 진화이고, 진화는 장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문명진화론에 따르면 문명의 변화는 마치 생물 진화의 돌연변이처럼 그 문명 체계 내에서의 새로운 문명 요소의 발명이나 발견에 의해서, 또는 유전자의 이동처럼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접촉으로 생겨나는 문명의 전파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물론 그 밖에도 유전자의 제거처럼 어떤 문명 요소가 제거되거나 유전자의 유실처럼 어떤 문명 요소가 소멸되어 문명의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요컨대 문명은 생물의 진화 원리와 흡사한 모양새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일찍이 인류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문명의 변화를 진화론적으로 고찰하여 이른바 문명진화론을 만들어냈다. 이 이론 가운데 전파에 의한 문명의 진화는 문명교류 문제와 직결되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명진화론은 다윈이 제창한 생물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는 문명진화론이 생물진화론보다 앞서 제시된 것이다. 다윈은 1859년에 저술한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생물진화론을 언급했지만, 그에 앞서 사회과학자 맬더스는 1798년에 저서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의 원리를 제시했고, 스펜서는 1852년에 발표한 논문 「발전가설」에서 문명진화론을 주장했다. 스펜서에 이어 인류학의 선구자인 모건과 타일러도 나름대로 문명진화론을 정립했다. 그들이 제창한 이른바 19세기 초기 문명진화론의 주요 내용을 보면 문명은 세계의 모든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연속적인 발전 단계를 따라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 단계는 야만 시대에서 미개 시대를 거쳐 문명 시대에 이르는 단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초기 진화론자들은 모든 문명은 똑같은 선을 따라 단계적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진화를 일컬어 단선진화라고 한다.
단선진화론자들은 각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구체적인 현상에 무관심하며 선교사들이나 상인들로부터 전문하여 신빙성이 결여된 자료들을 갖고 가만히 앉아서 인류 문명의 진화 과정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이른바 '안락의자 인류학자'라고 불렸다. 따라서 20세기 초반부터 그들의 이론은 전반적으로 거부되었다. 그 대신 2차 세계대전 전후에 활약한 인류학자 스튜어드가 주창한 이른바 다선진화론이 대두하였다. 이 이론의 핵심은, 모든 문명은 동일한 선을 따라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을 따라 진화한다는 것이다.
단선진화건 다선진화건 간에 문명의 진화를 교조적으로 생물 진화와 동일시하거나 대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양자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생물은 유기체이나 문명은 유기체가 아닌 초유기체인 까닭에 문명의 계승은 생식 과정에 의해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모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 문명의 이동
종래 문명의 기원에 관해선느 두 가지 설이 있었다. 하나는 문명이 한 곳에서 발생한 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는 문명단원설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문명이 제각기 자생한 후 발달되어 왔다는 문명복원설이다.
문명단원설은 기본적으로 문명의 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대두된 이른바 '맨체스터학파'가 대표적인 문명이동론자들이다. 이 학파에 속하는 스미스는 저서 「고대 이집트인」에서, 페리는 저서 「문명의 성장」에서 각각 문명단원론에 기초한 문화연속설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문명의 유일한 발상지는 이집트로, 거기서부터 문명이 세계로 계속해서 이동 및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문명의 이동이기 때문에 보통 문명이동론(설)이라고 한다.
문명이동론에 따르면, 문명은 3대 간선을 따라 세계 곳곳으로 이동 및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3대 간선은 다음과 같다.
① 문명 이동 남선 : 이 선은 이집트-시리아-홍해-남아라비차 반도-인도-인도네시아-중남아메리카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남선지대의 대표적 문화가 태양과 석물을 숭배하는 양석복합문화다.
② 문명 이동 중간선 : 이 선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이란 북부-중앙아시아 사막 지대-알타이 산맥-고비 사막-중국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중간선을 위요한 지대의 특징적 문화는 채도 문화다.
③ 문명 이동 북선 : 이 선은 이집트-중앙아시아(러시아 남부)-시베리아-북아메리카로 뻗은 길이다. 이 북선의 고유 문화는 즐문토기 문화이며, 대표적 유물은 비너스 상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3대 간선을 따라 펼쳐진 지구상의 모든 문명의 기점은 오로지 이집트로서, 문명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3대 간선은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3대 간선, 즉 해로와 오아시스로, 초원로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문명이동설은 일찍이 동양 문명의 서방기원설에 이용되어 그 '이론적' 근거인 양 오도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문명의 복원설이 밝혀지고 문명의 개별성이 강조됨에 따라 이 이론은 부정되어 가고 있다. 물론 문명은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하향 이동이 아니라 상호 이동(즉, 교류)인 것이다. 때로는 후진 문명에 대한 선진 문명의 이동이 일방적 이동으로 비추어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이동으로서 시간이 흐르면 후진 문명이 오히려 선진 문명을 앞질러 반이동을 할 수 있음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실증해 주고 있다.
'상식 및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HVAC 시스템 설계 개요 (0) | 2021.12.29 |
---|---|
특허 이해하기 (0) | 2021.12.08 |
유리 - 재료과학적 특성 (0) | 2021.12.07 |
기계설계 - 개요 (0) | 2021.12.06 |
자료 구조 및 알고리즘 (0) | 2021.12.03 |
댓글